'사격천재' 이은철, '빅데이터 전문가'로 세상을 조준하다
'사격천재' 이은철, '빅데이터 전문가'로 세상을 조준하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3.18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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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21 민기홍 기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하면 대부분 마라톤 영웅 황영조를 떠올릴 것이다. 몬주익 언덕을 가로질러 대회 피날레 금메달을 확정짓는 그의 만세 포즈는 한국 스포츠사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못지않게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종목이 사격이었다. ‘여고생 사수’ 여갑순이 공기소총에서 대회 1호이자 한국 올림픽 사격 1호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한 명 더 금빛 총성을 울린 주인공, 이은철(49)이다. 소구경복사에 나선 그는 8㎏에 달하는 소총을 단 한 차례도 놓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며 또 한번 애국가를 울렸다. 한국 올림픽 남자 사격 1호 금메달리스트. ‘사격천재’로 불리던 라이플맨은 24년이 흐른 현재 명망 있는 IT 사업가, 빅데이터 전문가로 변신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큰 꿈을 조준한다.

 이은철은 늘 최고였다. 미국 서긴고에 다닐 때인 1984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한국 사격의 대들보로 등장했다. 17세에 데뷔한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16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빙상의 이규혁(6회) 이전까지 한국인 올림픽 최다 5회 출전선수가 바로 핸드볼의 윤경신, 오성옥, 스키의 허승욱, 사격의 이은철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2회 , 아시안게임 5회, 아시아선수권 4회 제패 등 더할 나위 없는 스타선수 인생을 보냈다.

 

▲ 한국 남자 사격 1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은철은 지난해 7월 미국의 클라우드 빅데이터 전문기업 트레저데이터의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은퇴 이후 삶도 화려하다. 현역에서 물러난 2000년 소속팀 KT의 정직원 전환 제의를 뿌리치고 미국 실리콘밸리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프로그래밍 업체인 윈드리버에 입사했다. 세일즈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실리콘밸리테크, 인텔라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해 7월 미국의 클라우드 빅데이터 전문기업 트레저데이터의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이뿐이 아니다. 친화력과 외교력을 인정받아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 이사장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서 개최된 ISC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맡아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냈다. 2011년 3월에는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획득, 사격 현장도 찾는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사격을 버릴 수 없는 천상 스포츠인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은철 지사장의 다음 목표는 스포츠재단 설립이다.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서 만난 그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 나의 모든 활동은 재단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뛰어난 기술을 가진 훌륭한 회사가 나를 불러준 건 행운이다. 적게는 5년, 길게는 7년이면 재단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 이은철의 꿈은 스포츠재단 설립이다. 한국 스포츠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이은철이 재단 설립에 모든 것을 건 이유 

"하나에 몰두하는 걸 좋아해요 전. 재단 설립 말고 다른 건 하고픈 마음이 없어요. ISC 이사장도 저보다 훨씬 이름 있는 분이 해야 하는건데… 곧 임기를 마칩니다. 한국 스포츠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운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게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만들고 싶어요."

윈드리버 다음 직장인 IP인퓨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할 당시 이은철은 회사 매출의 30%를 책임졌다. 한국-대만 지사장을 지내며 자신감이 붙은 그는 2005년 가을 실리콘밸리테크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9년 여름엔 주식회사 인텔라를 설립해 영역을 확장했다. 매출이 100억원을 넘나들 만큼 꽤 큰 성공을 이뤘지만 재단 설립은 어림도 없겠더란다. 그리고선 쓴맛을 봤다. 2년간의 쉼표 후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트레저데이터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이은철은 왜 스포츠재단 설립에 모든 것을 걸었을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만난 강초현 때문이다. 마지막 한 발의 실수로 여자 공기소총 금메달을 놓친 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던, 그런데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으며 은메달을 목에 걸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미녀스타’ 강초현 말이다. 구김 없이 자랐을 것 같은 밝은 후배 강초현이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운동을 해왔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이은철은 삶의 목표를 재단 설립으로 정했다.

"비인기 종목은 어렵잖아요. 누군가는 미래를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제가 그 일환이 되고 싶어요. 정치력 같은 외부 논리와 상관없이 어려운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죠. 언젠가는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 사격선수로서 올림픽에 5회나 출전했던 이은철은 은퇴 후에도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사격선수로,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 

'사격천재' 이은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인천 자유공원 사격장이었어요. 코르크 총으로 쏘는 족족 맞춰서 인형을 땄어요. 집에 가 자랑을 했더니 ‘무슨 사격이냐’고 하시지 않고 사격장을 알아봐 주셨어요. 그 때가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구애받은 적이 없이 자랐어요. 어머니 대단하시죠? 저도 그렇게 대담한 부모가 못 됩니다.”

“진짜 웃긴 건 또 있어요. 1978년인가. 어린이사격잔치가 개최됐어요. 당연히 사격장에서 연습한 제가 1등이죠. 보이스카우트 친구들하고 쏘는데. 1회 대회라 크게도 다뤄졌어요. 더 신기한 건 그 대회가 어린이한테 군사 교육시킨다고 북한이 비난해서 2회를 끝으로 사라졌어요.”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렸던 ‘피스톨 박’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의 영향력 속에 개최된 어린이사격대회. 어머니 박인화 씨의 혜안과 과감함. 이은철은 “자유공원의 일도, 그 대회도 우연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격과 난 필연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해 10월 열린 ISC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이은철 ISC 이사장.

 

남들보다 이른 시작에 명석한 두뇌까지 더해지니 오랜 기간 정상을 유지하는 게 당연했다. 이은철은 “늘 왜라고 생각하고 파헤치는 습성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명하며 “사격은 반동이다. 자세와 장비, 사격복을 연구해 실탄이 나가는 방향을 예측하기 쉬워지도록 온힘을 쏟았다”고 현역 시절을 돌아봤다.

사업도 마찬가지. 그는 “내가 잘 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전공은 IT였지만 기술자로서의 역량은 떨어졌다. 중학교 때 미국유학을 가 언어 능력도 그렇게 좋지 않다”며 “어려운 기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 자리를 잡는 과정에 있는 곳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루스런 공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외국계 기업이 한국시장을 개척하는데 요긴한 인물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 트레저데이터에서는 한국의 스타트업 업체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빅데이터 분석 패키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지사장은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까지를 좋아하는 나는 체계가 확실히 잡힌 대기업들과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웃었다.

◆ 실패는 기회, 다운턴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인기 프로스포츠 선수가 아닌 이상 노후가 보장된 거액의 돈을 움켜쥐는 운동선수는 드물다. 그마저도 일부 스타플레이어에 한정된 이야기다. 대부분의 아마스포츠인들은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 그러다 보니 부상, 지도자와 불화 등으로 슬럼프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은퇴 후 성공적인 삶을 사는 체육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델같아 후배들을 향한 조언을 요청했다.

“어려움은 누구나 겪잖아요. 그럴 때 최선을 다해야 해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제가 직접 회사를 운영해봤더니 시장을 보는 안목이 생겼습니다. 시련을 고맙고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잘 몰랐지만 겪고 나니 알겠어요. 열심히 한 사람은 반드시 성장합니다. 이젠 어떤 힘겨운 일이 생기면 ‘잘 되려고 이러는구나’ 생각해요.”

이은철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열변을 이어갔다. 사업가로서 성공한 비결이 엿보인다.

 

▲ 이은철은 부상,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다운턴의 의미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팅을 잡고 세일즈를 합니다. 저는 갑을관계에서 을이죠. 10군데 돌아도 하나를 못 팔아요. 실패인가요? 100곳 가면 팔 수 있어요. 항상 당당합니다. 뚫기만 하면 돼요. 그럼 열리고 또 열려요. 1년 반이 걸려 물꼬를 트니 거래가 연달아 성사됩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쓰라린 기억도 거론하며 희망을 메시지를 전했다.

“올림픽에 5회 나갔는데 네 번은 메달이 없잖아요 제가. 사업도 크게 해보려다 실패했어요. 1987년에 한국신기록을 14번 경신했어요. 두려울 게 없었죠. 그런데 서울 올림픽에서 무너진 겁니다. 결선 진출도 못했어요. 죽고 싶었어요. 제가 종교는 없는데요. 하늘은 1988년처럼 성공 전에 큰 시련을 주는 것 같아요. 그 실패가 저를 겸손하게 했어요.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따고서도 고개 숙일 수 있었거든요. 어려운 때가 가장 소중한 시기이자 기회입니다. 다운턴의 의미를 새겼으면 좋겠어요.”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라 이은철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은철은 “운동인은 매우 영리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중학생 수준의 지적 수준만 갖춰도 대학교 교육을 받는데 문제가 없다”며 “운동이든 공부든 다 똑같다. 안 되는 것을 쫓으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고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언을 맺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다시 태어나도 사격인가, 후회하지 않는가. 이은철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똑같이 다시 살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삶을 살겠다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제, 그제 일도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사는 기자를 돌아보게 하는, 부러운 당당함이었다. “재단이 자리를 잡으면 사격 지도자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남자, 더불어 사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둔 이은철 지사장이 이른 시일 내에 꿈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은철 프로필

△ 생년월일 = 1967년 2월 11일
△ 출신학교 = 서울 홍파초-경희중-미국 오크모스중-서긴고-루스런대
△ 주요수상경력
- 1984년 LA 올림픽 소구경소총 3자세 17세 데뷔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공기소총 단체전 금메달
- 1987년 아시아선수권 공기소총, 소구경소총 등 4관왕
- 1990년 세계선수권 소구경소총 3자세 입사 금메달
-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이은철 소구경소총 3자세 2관왕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소구경소총 복사 금메달
-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소구경소총 3자세 개인전 등 2관왕
- 1995년 아시아선수권 소구경소총 3자세 단체전 금메달


△ 주요경력
- 1984년~2000년 국가대표
- 올림픽 5회 연속 출전(1984~2000년) 
- 실리콘밸리, 인텔라 대표이사
-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 이사장 
- 현 트레저데이터 한국 지사장
- 국제사격연맹 국제심판

[사진= YK미디어 DB]

[2016.03.18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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